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폰티우스 필라투스 (문단 편집) == 기타 == * 3~4세기의 교부 에우세비오가 교회 전승에 따라 저술한 교회사에 따르면 [[칼리굴라|가이우스 황제]][* 포르노 영화 제목 덕에 대중들에게는 통칭인 칼리굴라로 유명한 황제다. 과거에는 [[세네카]]와 [[수에토니우스]]의 조작된 기록으로 인해 막장 폭군이자 암군으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권력 강화 중 암살된 황제 내지 원로원과 공화주의자들의 반격으로 암살된 황제 등으로 재평가 중이다. 이런 흐름처럼 21세기 이후 발간된 논문들에서도 고대 로마인들의 기록, 당대 로마 원로원과 황제 본인 및 서민들의 황제 표기 등을 존중한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고학 기본서 등에 의거해 가이우스로 표기하면서, 칼리굴라라는 비공식 통칭을 각주에 집어 넣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이 황제와 동시대 사람인 유대인 필로, 요세푸스를 비롯하여 100년 뒤의 타키투스, 200년 뒤의 디오조차 이 황제를 가이우스로 기록하고 있다.)]의 명령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이게 맞다면 티베리우스 대신 가이우스(칼리굴라)가 폭력사태의 책임을 물어 자살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는 건데, 티베리우스와 달리 그 후임 황제인 가이우스는 재위 초반부터 과거 아우구스투스처럼 총독이나 지방장관이 명령불복종을 하거나, 명백한 불법행위로 소요를 발생시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 드러날 경우 "스스로 책임지고 불명예를 씻어라"라는 차원에서 칼을 보내 자결을 명령했다.[* 칼리굴라의 4년 치세 동안 로마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갈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서 유대인 필로는 알렉산드리아 사태 당시, 가이우스와 직접 대면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제정 이후 사형 집행이나 십자가형은 동방은 시리아 총독(Proconsul)이, 서방은 로마의 집정관이 보고 후 황제의 허락이 없이는 형을 집행유예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걸 유다이아 Praefectus가 멋대로 형을 집행했으니, 즉위 직후부터 황권 강화에 매진하면서 황제와 율리우스 가문의 우월함을 강조한 가이우스가 용서할 이유가 없다는 추측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꿈자리가 사나웠다며 처형을 말렸던 필라투스의 아내가[* [[마태오 복음서]] 27장 19절: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전갈을 보내어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웠습니다."하고 당부하였다.]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전승이 있는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도 묘사되었다. 필라투스의 아내의 꿈에 대한 얘기는 메리에타 데이비스의 "천국에서 보낸 9일" 책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 야사 중에는 아예 필라투스가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예수를 옹호하다가 [[순교]]했다는 것까지 있다. [[합성론]] 계열인 [[이집트]]의 [[콥트 교회]]와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필라투스의 아내를 성녀로 모시고 있는데, 이 전승에서 필라투스의 아내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라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개신교]] 계열 라디오 방송인 [[극동방송]]의 방송인 주일 드라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뤘을 때 필라투스의 아내의 이름을 클로디아로 설정했다.] 한편 필라투스 자신이 [[주교]]가 되었다는 전설, 필라투스가 처참하게 처형당한다는 [[외경]]의 이야기도 전한다. [[외경]]에서 필라투스에 대해 이렇게 말이 다른 것은, 결국 외경이 쓰여진 시절에도 필라투스에 관한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 유대 장관 외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많은 역사 소설의 [[떡밥]]이 되는 인물이다. * [[대체역사]]를 모아둔 [[만약에(대체역사)|만약에]]라는 책에서는 유대인들의 반항을 묵살하고 예수를 풀어준다. 이 책에서 [[예수]]는 무려 '''97세'''란 경이적인 장수를 누리고 평온하게, 노환과 지병에 약간 고통받으면서, 그리고 왜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지 고민하면서 사망한다. 사랑과 순종을 주장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통치에 적합하므로 유대교의 개혁 정도로서 로마의 국교가 되고, 게르만까지 일찍 퍼져나가 로마를 안정시켰으며, 로마는 아메리카까지 도달한다. 단 이 세계관에서는 [[이슬람|예수는 어디까지나 위대한 예언자]]이기 때문에 [[유대교|예수가 거짓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이나 [[기독교|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이단죄로 화형을 당한다(...) * [[러시아]]의 문호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죄없는 예수를 처형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으로 꽤 비중있게 등장했다. 이 책에서의 빌라도는 예루살렘을 증오하며, 자신의 개 외에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살을 꿈꿀 정도로 성마르고 피폐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끌려온 예수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그를 자신의 별장이 있는 지방으로 추방시키고자 했으나 결과는… 사실 단순히 잠을 못 이루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죄책감, 즉 죄없는 이를 처형시켰다는 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무려 1만 2,000번의 잠 못드는 만월을 반복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거장이 자유를 부여하고 나서야 예수의 곁으로 떠났다. * 한국에서도 [[임동진]][* 원래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연기자였으나, 후에 신앙심이 깊어 [[목사]]가 되었다. [[애마부인]]에 출연한 [[흑역사]]가 있다.]이 주연한 연극 《빌라도의 고백》이라는 1인극이 만들어졌다. * 필라투스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티베리우스에게 보냈다는 "빌라도의 보고서"가 있었으나, [[위작]]으로 밝혀졌다. * [[예수]]를 판결했기 때문에 인지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주마다 한 번씩 수십억 명에게 디스를 당하는 신세다. 가톨릭과 성공회의 전례에서 이 인물의 이름이 나오는 신조가 필수이다. 또한 비록 기도문이 아닌 신앙고백이지만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일상생활에서도, 아프거나 자기 전에나 딱히 기도가 떠오르지 않을 때 사도신경을 간단히 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요일이 아닌 날에도 수억 번 정도는 까이고 있을 거다. * [[요셉(창세기)|요셉]]의 전 주인이었던 [[보디발]]과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부인이 있는데다가 높은 관리로, 죄가 없던 사람, 즉 예수와 요셉을 죄인으로 취급하여 처벌을 내렸다. 차이점은 빌라도는 로마 군인 출신인 유대 지방의 총독이고, 보디발은 이집트의 시위대장이었다. *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그의 질문은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이 질문 하나로 인해 필라투스를 높이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경의를 표해야 할 인물로 필라투스를 들었다.[* 저 말만으로 본다면 필라투스는 아르케실라오스와 [[카르네아데스]]로 대표되는 [[회의주의]] 전통의 가르침을 연상케 한다. 당시 로마 장교들은 저마다 다른 학파의 철학자들로부터 교육을 받곤 했다. 필라투스 역시 장교로 양성되는 과정에서 철학 교육을 받았을 개연성이 있지만, 회의주의 철학자의 밑에서 배웠는지 여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 희한하게도 스위스에도 흔적을 남겼는데, 루체른에 관광 가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필라투스 산이 이 인물이 죽은 곳이라 그의 이름을 땄다는 전설이 있다. * 필라투스는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콥트 교회]]에 의해 6월 25일로 축일로 지정됐다. 복음서가 필라투스를 예수를 처형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교회는 필라투스가 회개하여 기독교인이 되었고 역사적으로 콥트 교회가 공유하는 믿음인 순교자이자 성인으로 그를 존경한다고 믿는다. * 먼 훗날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신을 빌라도에 비교했는데,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의 주인공이다. 아이히만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듯이, 빌라도 또한 당시 상황에 따라 자신의 직업 의무를 다한 것 뿐이라면 악의 평범성에 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